아이들이 드디어 모두 잠들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이 늦은 시간만이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유 시간

 

4살 둘쨰의 짜증이 갈 수록 심해지는 듯 하다.

공갈 젖꼭지 하나면 알아서 잠도 잘 자던 둘째 치아배열이 잘못될까 걱정하며 

강제로 끊어 구강기를 충분히 겪게 하지 못하게 했기 떄문에 돌아온 나의 업보일까?  

 

첫째는 참 순하다. 

세상이 뭐가 그도 궁금했는지 엄마 뱃속에서 한 달 일찍 나왔던 그 때, 

 

벌써 일곱살이 된 너지만 아빠는 너와의 첫 만남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태반이 조기 박리되어 그대로 두면 엄마도 너도 위험하다는 선생님의 말에 

떨리는 손으로 수술 서약서에 서명하고 무서워하는 엄마 손 꼭 잡아주며 괜찮을 거라 위로하고

 

무사히 세상밖에 나왔다 싶더니 달 수를 채우지 못해

폐 기능이 정상이 아니라던 의사선생님의 말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줄 알았다.

신생아 중환자실 내 인큐베이터에 너를 넣어두고 펑펑 울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제발 건강하게만 자랄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매일 면회 때마다 조용히 너를 보며 기도했다.

욕심부리지 않겠다고, 무사히 엄마 아빠 품으로 올 수 있게만 해달라고.

  

첫째는 아빠를 참 좋아한다.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말도 자주해주고 잠도 아빠랑 자야하고 어딜 가더라도 아빠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런 첫째에게 나는 요즘 자주 화를 내곤 한다.

첫째에게 바라는 것들, 욕심이 많이 생겨서 그런 것일까?

 

문득 인큐베이터에서 고생했던 아이의 모습과

아이가 건강하게 우리 품으로 들어올 수만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내 모습이 다시금 떠오른다.

괜시리 미안한 마음에 아들을 한 번 더 안아본다.

조금 전에 아빠에게 혼났지만 아빠가 안아주니 아들은 그저 좋다.

 

아빠가 미안하다.  욕심부려서 미안.  그리고 아빠 사랑해줘서 고마워.

그냥 고마워 아들.  잘 자. 

지금 아니면 시간이 없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뉴스로 보는 종목 탐구는 못 쓰겠다.

자야겠다.